일상의 “본 카텐 테안( Bonn, Kathen, Tean)”을 위하여
차미경
2014년 1월 캄보디아 도시 프롬펜 인근 공단에서 의류봉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정치적 시위로 번진 적이 있다. 시위대 참여자들이 수십만에 이르자 무장한 군인들이 등장하고 유혈사태가 발생하여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수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때 나는 우연히도 바탕방과 시앰립을 방문 중이어서 지인에게 최저임금 인상요구가 반정부투쟁으로 확산된 사회문화적 배경을 들을 수 있었다.
폭력, 군인, 부모님 세대가 겪은 학살과 기억의 소환이었다.
출처: www.hani.co.kr (화면 캡쳐)
캄보디아는 인구 다수가 농민인 전통적인 농업국가로 1차 산업(농·어·산림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이 농민들의 자녀들이다. 이곳에서 농민이란 크메르 루주 정권에 의한 집단학살의 피해자들이며 생존자이며 당사자들이다. 1975〜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기아. 고문, 처형, 강제노동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문헌마다 다른데 대략 100만〜 220만으로 추정되며 인구의 4분의 1〜 5분의1에 달한다. 캄보디아 현대사의 비극은 지금도 집단학살의 원인을 둘러싸고 역사가들의 연구와 성찰적 기록화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시 시민들을 수감했던 뚜올 슬렝(S-21) 형무소와 쯔응아익 매장지는 뚜올 슬랭 학살 박물관으로 탈바꿈되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지만 내가 처음 갔을 때는 음산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고등학교였던 형무소 건물에 수감되었던 이곳의 2만여 수용자 중 살아나온 숫자는 몇 안 된다. 전시된 해골들을 보면 나치 인종학살이 남긴 ‘근대의 실패’ 와 ‘이성의 실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S-21의 저자 데이비드 첸들러(David Chandler)는 이 사건은 명백히 테러의 역사였음을 출판기록물 『Voices from S-21』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테러는 재난 중 가장 강도 높은 계획된 사회재난이다.
역사학자들 중에는 윌리엄 샤유크로스처럼 1970년 미국이 남베트남 해방전선의 거점을 공격하려고 인근 캄보디아 농촌에 무차별 학살을 한 게 빌미가 되어 훗날 많은 농민들이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 공산당 가입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공산주의 이상과 망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폴토트 정권의 권력자들과 병사들이 보여준 야만성과 광기는 인간이 어디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 S-21 희생자들>
출처: http://www.killingfieldsmuseum.com
학살의 주범 폴포트와 함께 캄보디아 현대사에서 정치인 시아누크의 도전과 한계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아누크는 1953년 프랑스 보호국이던 캄보디아의 독립 이후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 군사동맹 불체결 선언, 1957년 영세중립법을 공포하는 등 국가의 중립화에 공헌했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 회원국으로 참여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비동맹·중립 외교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실패한 정치인의 모습은 시민과 민주주의가 없는 일상에서 변화보다 좌절이 더 쉽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가 초기 정치에서 지향했던 중립화 노선과 반둥정신은 자본 주도의 세계화 질서 속에서 한 시대의 역사적 기억을 잊혀진 공간에 가두는 꼴이 되었다.
<그림> 잊혀진 공간 반둥회의
출처: Afro-Asia Conference in Bandung, 1955 (ANTARM/IPPHOS)
캄보디아는 오랫동안 소승불교를 믿는 크메르인들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지만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세계화로 인하여 인종, 언어, 문화가 달랐던 아시아 사람들의 물리적 거리는 어느 때보다도 좁혀졌다. 의류업체 노동자들이 제기한 당사자들의 빈곤해지는 현실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한국에 거주하는 48,000여 캄보디아 인구 중 농어촌 노동자들과 결혼 이민자들이 겪는 고충 역시 세계화담론이 해결하지 못하는 민중들의 현실이다. 캄보디아인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민주주의 위기, 학살 이후의 내면적 고통은 모두 진행형이다.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함께 할 수 있을지 생각할 때 비로서 내면의 연대가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캄보디아 시엠립에 소재한 주민단체(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제작한 포스터를 지금도 기억한다. “당신들의 구호활동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재난을 연구한 레베카 솔닛(Solnit Rebecca)은 독립적인 시민들을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는 ‘피구호민화(pauperization)’ 현상 과 쏠림에 주목하며, 종종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실이 문제임을 제기했다.
지금 캄보디아는 식민지 과거청산을 위해 들어온 유럽 NGO와 개발협력청, UN, 일본의 개발협력에 이어 한국NGO들과 종교단체, 개발협력단체 등 수십년 째 NGO와 홍수 속에서 캄보디아 시민들이 생각하는 변화와 자력의 문제, 일상의 수평적 관계와 자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능할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해야 할 것 같다.
캄보디아인 친 야한(Chin Yahan)은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정신과 문화, 공존의 경험으로부터 일상의 평화구축을 위한 “본 카텐 테안”의 정신을 강조한다. 야한이 본 평화의 시작은 삶의 공간인 장소, 그곳에서의 서로의 환대로부터 출발한다. 마을이나 지역은 나이, 성별, 지위, 주최와 손님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환대를 위해 모임을 준비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차별이 없는 연습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결속을 이어가는 행위의 주체자들 사이에서 경계는 완화된다. 진심을 다해 작성한 초대장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여 감사의 마음을 모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전통 춤을 추고 음식을 나누눈다. 기도와 물질 나눔과 축복 안에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만남에게는 기쁨을 표한다.
솔릿은 재난은 폐허이지만 긴 배려와 친교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이 이 고통 가운데 희년을 맞는 탐사의 공간임을 주목했다.
‘간신히 살아 있는 모든 것 카텐을 위하여
분노와 혼란이 제거되는 본을 위하여
도움을 주고 헌신하는 서로를 위한 선물 테안을 위하여
“본 카텐 테안” 이라는 오래된 전통이 험란한 재난사를 겪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평화의 선물이 될 수 있다니, 나도 그들에게 본 카텐 테안에 동참하고 싶음을 알린다.
당신과 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