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족 평화운동가 모에 (Moe) 씨와의 인터뷰
미얀마 군부의 폭정이 날로 악랄해지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600여 명이 희생되었고, 그 중 50명 정도가 어린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오랫동안 싸워 온 카렌족 평화운동가 모에 (Moe) 씨를 모시고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었던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 2020년 선거에서 군부 주장대로 부정이나 조작이 있었습니까? 커친족은 이러한 불법 선거를 이유로 선거를 거부했다는 데 맞는 말인가요?
선거가 몇 가지 이유로 부정과 조작이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첫째, 사기라면 선관위원 중 누군가가 언론에 유출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군부와 군부정당을 제외하고는, 선관위원과 미얀마 전역에서 선거를 감시한 수백 명의 참관인 중 단 한 사람도 이런 부정선거를 사례를 고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둘째, 미얀마 전체가 부패로 악명이 높습니다. 지방과 주정부 차원의 관공서에서는 뇌물 수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군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려면 선관위원 몇명에게 뇌물을 주어 선거공모를 조작하면 됩니다. 저는 군부가 이것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선거 과정에서 약간의 비정상적인 일들이 있었던 것을 침소봉대하여 선거결과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 버마는 부패로 악명이 높다고 하셨는데, 군부와 관련된 구체적인 예를 한두 가지 들어주실 수 있나요?
버마 친구들에 따르면,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그의 부인은 중국 상공은행(ICBC)에 두 개의 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ICBC와의 거래는 미얀마 군부와 베트남 국방부가 소유한 비텔과의 합작 법인인 “마이텔”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이텔은 미얀마 4개 통신사 중 하나이며 군부의 주요 수입원입니다. 아웅 흘라잉 아들이 아들이 마이텔의 중진이며, 그의 손자들은 현재 미얀마에서 가장 비싼 국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흘라잉 최고 사령관과 다른 고위 장성들은 군부의 주요 수입원인 미얀마 경제 홀딩스 (MEHL)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장군들과 그 가족, 친척들은 매우 부유하고, 모두가 외국 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자녀와 손자 손녀들은 외국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미얀마 민중들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 한국 사람들 중 일부는 “미얀마 군부가 진정으로 민족자주와 국민통합을 위해 일하는 반면, 수치 여사는 서구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주적 미얀마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 세대에 걸쳐 우리들은 군부가 피땀을 흘리고 목숨을 바쳐 미얀마를 식민주의자들(영국과 서구 국가), 민족 분리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켜왔다고 역사책에서 배워 왔습니다. 이 선전, 선동은 1988년 항쟁 전까지 버마족에게 먹혀 들었습니다. 그러나 1988년 항쟁 이후, 주로 버마족 학생들이 다른 민족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민족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군부의 비난이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공산당 역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유일한 적대화 대상은 식민주의자들인데, 수치 여사가 영국 국적의 남성과 결혼한 이후 군부는 ‘식민주의자 꼭두각시’라는 프레임을 계속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방 국가들이 1988년 항쟁을 지지했을 때도, 이러한 프레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군부는 항상 외부의 위협을 조성함으로써 그들의 전선을 결속합니다. 외부의 위협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민족분리주의, 식민주의 등의 낡은 프레임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자, 군부는 현재의 민간정부가 서방의 지원을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잠재적인 위협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회주의 기치를 내걸고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 윈은 처음에는 미얀마가 반둥 비동맹 회의의 일원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후에 여기서 탈퇴하고 미국, 영국, 호주 등지에 장교들을 파견해 공산군의 반란 진압 작전을 위한 군사 및 정보 훈련을 받게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 나라를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미얀마 군은 분명히 그들로부터 이익을 얻었습니다. 결론은 미얀마군부가 제국주의나 민족자주 같은 가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그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 수치 여사가 군사 쿠데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각에서는 수치 여사 정부의 무능함이 군과 국민의 불만을 부추기고 쿠데타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하던데요.
아니오, 저는 수치 정부에게 군사 쿠데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부는 항상 남을 비난하지만 그들 자신은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수 민족들, 공산주의자들, 다른 미얀마 야당들, 그리고 서방을 비난해 왔습니다. 이제, 군부와 그 지지자들은 수치 여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저는 그들이 미래에는 다른 누군가를 비난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군부는 수치 여사와 NLD와 소수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헌법이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힘을 축소시키고, 반면에 소수 민족의 참여를 확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군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입니다. 미얀마인들에게는 유아기에 문제의 싹을 제거하는 것이 성인 때보다 훨씬 쉽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이제 군부를 위협하는 세력이 유아 단계에 있을 때 쿠데타를 통해 원천적으로 그 뿌리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로힝야족 인권침해 사건을 통해 미얀마 정부와 라카인 불교계를 악마화 했다는 비난에 동의하시나요?
나는 수치 여사와 민족민주동맹 (NLD)이 라카인주와 로힝야에 대한 군사작전에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군부는 정부 내 정부이기 때문에 수치 여사가 공개적으로 군사작전을 반대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NLD가 군사작전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유엔과 국제 사회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안일하고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결국 NLD가 소수 민족문제 해결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당내 의견들이 엇갈리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NLD의 일부는 1988년 항쟁의 세대이고, 소수 민족들이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NLD는 소수 민족 문제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NLD의 다른 일부는 소수 민족 문제에 대해 매우 경계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NLD는 소수 민족에게 최대한의 참여를 보장하는 미래의 연방제에 대한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 번역, 편집/ 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