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헤이트의 배경과 원인 2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아시아인 증오” (아시안 헤이트)에 대한 의견을 들어봅니다. 이번 주 인터뷰는 미국 장로교회 (PCUSA)가 한국으로 파송한 선교사 컬트 에스링거 목사와 진행하였습니다. 에스링거 목사는 2013년 한국으로 파송되어, 지금은 NCCK의 평화통일선교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반도 에큐메니칼 포럼” 코디네이터를 맏고 있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인터넷 접근성과 속도 향상을 위해 본 홈페이지 디스플레이를 약간 변경하였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1. 아시아인을 향한 폭력과 미국 내 소수자 그룹 간의 갈등이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 체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먼저 저는 이 폭력이 주로 미국의 두 소수자 그룹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물론 통계에 의하면 아시아인에 대한 흑인의 공격 비율이 백인 보다 약간 더 높지만, 언론은 이 차이의 중요성을 과장합니다. 백인 우월주의 체제의 일부로서 언론은, 선택적으로 흑인이 연루된 폭력 사건에 대해서 공평하지 않게 방송 시간을 배정하고 불공정한 사회적 논의를 조장함으로써 인종 편견을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백인 폭력은 애틀랜타 총기난사 사건이나, 중국 할머니가 뉴욕에서 자신을 공격한 백인을 옹호하는 이야기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합니다. 앞서 이은주 목사님이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유색인종들이 백인 폭력을 포함한 대다수의 인종 갈등을 흡수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백인 사회는 이러한 갈등과 폭력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레드라이닝(redlining)과 인종분리(segregation)를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레드라이닝은 은행과 주택금융 대출회사들이 유색 인종에게 고금리를 부과해 주택대출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인데 50년 전에 폐지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대부분 유색인종들이 살고 있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붉은 선을 그어 ‘고위험 대출’ 지역으로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백인 거주 지역에서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거주 지역에서 조차 고금리의 부동산 대출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주택 소유에 의해 가족 재산이 축적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레드라이닝 제도는 인종적 재산 격차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또한 지리적으로 볼 때 여러 유색인종 공동체들이 붉은 줄로 표시되어 분리된 작은 공간으로 몰려 들었고,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자원에 대한 치열한 경쟁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백인 인종차별주의는 아시아인들이 백인 우월주의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는 “모범적 소수자”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모범적 신화는 곧 흑인 사회를 향해서 ‘소수자 아시아인들처럼 잘하면 너희는 그렇게 가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흑인들은 미국 사회의 최하층에 위치하고 아시아인들은 그들 보다 위지만 여전히 백인들보다 아래인 인종 계급 구조가 만들어 집니다. 이러한 계급 구조는 백인 우월주의의 모순을 감추고 유색인종 공동체가 미국에 오게 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아시아인을 향한 흑인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유발시켰는데, 특히 아시아인들이 자발적으로 모범적 소수자의 역할을 맡고 백인의 권력과 결탁할 때마다 더욱 그러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는 유색인종 공동체들을 서로 대립하게 함으로써 인종차별주의 체제에 대해 누적된 분노를 흡수하게 했고, 권력과 자원에 대한 백인들의 지배권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인종차별의 생태계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도 백인들이 자신들이 만든 인종 차별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고, 유색인종 공동체들이 서로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보다는 서로 연대하여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2. 왜 아시아의 아시아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염려해야 하나요? 미국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요?
미국 내 유색인종들의 삶을 본질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유색인종 공동체에 대한 폭력문화를 배양하는 미국의 제도적 인종차별주의는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유색인종 국가의 삶을 평가절하하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아시아 전역에서 감행한 무수한 전쟁과 군사적 행동,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의 폭력적 외교정책은 사실 오늘날 국내에서 목격되고 있는 반아시아주의의 국제적 표현입니다. 필리핀의 식민지화, 한국의 노근리 대 학살, 베트남의 마이라이 대학살과, 라오스와 캄보디아로의 전쟁 확산 등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반아시아주의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저는 분단 체제로 신음하는 한국인들의 고통 속에서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죽음을 초래하는 비인간적인 제재를 통해 한반도에서 미국의 반아시아주의를 경험합니다. 이 목사님이 언급했듯이, 아시아인에 대한 ‘마구잡이’ 폭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코로나 대유행을 둘러싼 반중국적 언사에 의해 악화되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진행중인 사건들이 급증했을 뿐입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폭력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은 경제적 이익과 자원에 대한 접근으로부터 아시아인들을 소외시키려는 정책을 실행하는데 이는 국내외적으로 경제력에 대한 백인들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3. 이런 맥락에서, 반인종차별을 위해 어떻게 국제적으로 연대할 수 있나요?
미국의 유색인종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데 사용되는 ‘모범적 소수자’ 신화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시장과 자원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을 허용할 자발적인 동맹국을 찾습니다. 어떤 아시아 나라에는 백인 주의와 서구화에 동조하는 “좋은 나라”라는 딱지가 붙고, 어떤 나라에는 미국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 이슬람교도들,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나쁜 나라”라는 딱지가 붙어서 “반대하고, 싸우고, 죽어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좋은 아시아인이고, 그들은 나쁜 아시아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저는 아시아 공동체를 서로 대립시키는 이러한 구도에 저항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과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몇몇 사람들이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인종 차별적 태도가 존재하는데 미국의 인종차별적 외교 정책을 비난할 수 있느냐’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말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잘못된 가정들에 저항해야 하고, 반 인종차별을 위해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도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한 인종이나 민족이 어느 다른 인종이나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평가절하된 공동체들과 함께 서서 연대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흑인, 아시아인, 미얀마인, 중국인, 필리핀인 그리고 북한 주민들, 그들 생명 모두가 중요하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포와 실천을 통해 전세계의 모든 공동체가 지배 받지 않고 함께 번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번역,정리/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