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
미얀마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복 경찰과 군인들이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시위 동조자들을 찾아내 온갖 인권유린을 저지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민중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연대는 점점 느슨해지고 있어, 다시 한 번 연대와 지원을 호소합니다. 이번 호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교회가 지원한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CDM) 참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편지 1
제 이름은 마(가명)이고 23 살입니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기 전에 저는 부모님과 누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마비성 뇌졸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지방에서 화물 운송업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 가족은 제가 공무원에서 일하기 전에는 살 곳이 없어, 삼촌과 함께 살았습니다. 삼촌은 미얀마 소방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 라인 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삼촌이 은퇴한 후, 우리 가족은 모두 그 라인 룸을 떠나야 해서, 저는 미얀마 철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우리 지도자 아웅산 수지가 국가 발전을 이끌고 있는 반면 군부는 국가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로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제가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나서부터 정부뿐만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도 많은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경고문을 2차례 발송하고 오늘 최후 통지문을 보냅니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밤 울며 전화하셨습니다. 정부는 제 어머니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아들이 직장에 복귀하지 않으면 체포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집을 떠나 자전거 가게에서 일반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나는 두려움 속에 살면서 숙면을 취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무기를 들고 독재자들과 싸우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걱정돼서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편지 2
제 이름은 사(가명)이며, 23세의 석공입니다. 여섯 가족의 장남이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줄곧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군사 쿠데타 이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양곤에 와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3월 14일 군대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고 그날 바로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5월 첫 주에 두 번째 주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의 여동생은 제가 일을 못하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정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의료지원과 가족생계비 지원을 받았을 때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5개월 동안 일할 수 없지만, 이 지원 덕택에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봄 혁명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자부심으로 느낍니다. 회복되면 계속해서 혁명에 참여할 것입니다.
미얀마에서 온 편지 3
안녕하세요 저는 소(가명) 라고 하며, 전직 교사입니다. 최근 대학시험에 통과한 아들과 중학생 딸, 택시운전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헌신적인 남편, 이렇게 사랑하는 세 가족이 있습니다. 저는 철도노동자가 거주하는 주택을 임차하여 생활하였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제가 일하고 있는 헌혈모임에서 긴급수혈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데 할애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9월 저는 암 판정을 받았고 이제는 제가 수혈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쿠데타가 발생하고, 탄압이 극심해지는 시기, 저는 미얀마시민불복종 운동(CDM)에 가담하여 군부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는 미얀마 형법 505조에 따라 기소되어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지금 제 가족과 또 다른 세 명의 철도청 직원들과 함께 외딴지역에 은신해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저는 지금 암 판정을 받은 환자이기 때문에 수혈을 받아야 하는 위중한 상황에 있지만, 긴박한 현지상황에서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보내주신 지원금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료받을 수 있는 것에 너무나 기뻤고,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를 위해 기도하시는 한국교회의 모든 분들을 위해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미얀마 시민들의 혁명이 승리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얀마에서 온 편지 4
저는 이름은 E(가명)고 21살, 기혼입니다. 음식 배달 서비스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군사 쿠데타 이후 직업을 잃었습니다. 봄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시위대 가까이 있다가 총에 맞았고 도망갈 수 없어 체포되었습니다. 군인들은 저를 끌고 가 차 안에서 고문했습니다. 경찰이 저를 발견하고 군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5시간 30분이 걸린 위 수술을 받았고 신장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또 내장을 4인치 잘라야만 했습니다. 장기 또한 손상되어서 23일간 입원했고 그 후 군 당국은 저를 지방 교도소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형법 505조 (a)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자동차 타이어를 태운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저는 건강이 좋지 않지만, 교도소에서는 진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의사들로부터 치료를 받았습니다. 많은 의사들이 감옥에 있고 일부는 가택 연금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교도소 직원들의 도움으로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가족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 번역, 편집/ 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