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아프가니스탄,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유정길 선생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소장, 정토회 한국JTS 전 아프가니스탄 카불지원팀장) 인터뷰
1. 먼저 선생님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아프간에서의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지금 불교환경연대의 녹색불교연구소소장으로 있구요. 정토회 에코붓다의 이사입니다. 당시에 911테러 이후 미국의 개입으로 23년 간의 전쟁이 끝난 아프가니스탄에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간 한국JTS 카불지원팀장이라는 직책으로 <긴급구호활동>과 <개발협력활동>을 해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긴급구호활동은 카불, 칸다하르 바미안 등지에 월동용 의류와 이불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개발협력활동으로는 칸다하르의 IDP난민캠프에 식량지원활동을 했고, 약 6-70개의 텐트학교를 지어서 어린이 급식과 교사훈련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카불북부의 사카르다라라는 마을에 학교와 보건소, 다리 여러 개를 건설해주는 지원과, 어린이 교복과 도서 등 지원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2. 해외지원활동이 같은 줄 알았는데 <긴급구호>와 <개발협력>이 다른 것인가요?
지원하는 데 있어서 <긴급구호>와 <개별협력>은 다릅니다. <긴급구호>는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대규모로 재난지역의 주민들에게 식량과 의류, 주거 등을 제공하여 생명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무료로 물품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 좋지 않습니다. 자발성보다는 의존성이 커지고, 마을주민들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지원기관에 의존하는 잘못된 문화습관이 만들어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 <개발협력>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 단계에는 주민들 스스로 주체적 노력을 통해 재난과 어려운 상황을 자발적으로 극복하도록 지켜보고 섬세하게 도와야 합니다. 공급자적 시각에서 그저 마구 베풀고, 과시적 성과를 위한 활동은 주민 주체성을 만들어야 하는 마을 현장을 오염시키는 잘못된 일입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그들의 주도적 자발성을 절대 훼손하지 않고 자립 의지를 고양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오래 걸리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밀착해서 함께 생활하면서 설득과 교육 등이 필요합니다.
3.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종교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가입니다. 인근에 이란,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즈키스탄, 중국 등 6개 국가와 국경을 맞닿아 있습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또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나라입니다. 또 소련은 남쪽의 부동항을 얻기 위해 반드시 장악하고 싶은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침략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세계 최대 강대국인 영국, 소련, 미국도 침략했지만 결국 그들의 저항으로 인해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강대국의 무덤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곳은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 산맥 등 고산준령이 있는 나라여서 게릴라들이 활동하기 아주 용이합니다. 정말 강인한 민족성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파슈툰 왈리”라는 손님에 극진한 전통도 있고, 근대화 이전의 문화를 갖고 있는 개별적으로 참으로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국가입니다. 탈레반의 주축인 파슈툰족이 42%이지만, 타직(27%), 우즈백족(9%)도 있고, 우리같은 몽고리안인 하자라 족(9%)들도 바미안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이중 하자라는 다른 주류 순니파 이슬람과 달리 이란과 같은 시아파 이슬람입니다. 탈레반은 시아파를 이교도보다 못한 불신자로, 이슬람도 아니라고 취급할 정도로 적대적입니다. 그래서 서로 정말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과거 탈레반 정부 당시 지역별 세력 (파슈툰, 타직, 우즈백, 하자라)들과 13년 간의 내전과정은 과거 소련과의 전쟁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4. 탈레반과 미국과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사실 지금의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키운 것은 소련과 대립했던 미국이었습니다.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은 이들에게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이들이 지금 미국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지요. 현재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국경은 두란드 라인 (Durand Line)이라고 합니다. 100년 전 그어진 국경인데 아프간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남쪽 국경 변에 파슈툰족들 약 5500만 명 넘게 살고 있는데 파키스탄에 4천만, 아프간에 1천5백만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국경을 무시하고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탈레반이 파키스탄으로 도망가면 국경 넘어 파키스탄을 공격할 수 없어 미국은 사실상 그들을 섬멸하기 어렵게 된 이유입니다.
5. 탈레반 정권이 여성의 인권,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보도가 많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탈레반 정권의 과제가 무엇인지요?
20년 전인 탈레반 집권기 (1996∼2001년)의 반인권적 정책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남자들은 반드시 수염을 길러야 했고, 여성들은 외출할 때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동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했습니다. 또 외출할 때도 전신을 가리며 눈만 그물망으로 뚫려있는 <브루카>를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성들의 교육을 금지하다 보니 여성학교는 당연히 폐쇄되었고 여성교사가 많은 남자학교마저도 폐쇄해야 해서 결국 교육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아버지와 남자형제들에 의해 여자들이 명예살인을 당하기도 했고, 음악과 춤은 금지되었으며,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제도나, 손발절단형의 처벌 등, 반인권적인 정책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2001년 세계의 문화유산인 바미안 대불 2개를 폭파하는 등, 반달리즘적 반문화적인 행동을 해온 정권으로서 세계적으로 큰 우려와 염려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문화를 섬세하게 이해하려면 <이슬람>과 <부족전통문화>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과거 조선시대에서 최근 50년 전까지만 해도 남존여비, 여필종부, 삼종지도 등의 남성중심 문화가 강하게 있었습니다. 아직 근대화되지 않은 것이지요. 기독교국가인 유럽이나 미국 등에도 여성의 참정권이 생긴 것이 불과 100년도 안 되었고 남아공의 흑백차별이 폐지된 것도 불과 30년 전입니다. 탈레반의 문화는 이처럼 근대화되지 못한 봉건적인 문화 때문이지, 이것이 이슬람이라는 종교 때문이라고 혼돈하여 바라보면 안 됩니다. 아직 근대화되지 않은 그들의 문화는 문화대로 이해하면서 변화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6. 탈레반의 신정정치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신정정치를 꿈꾸는 혁명정부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란수준의 회교혁명을 하려 한다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강력한 자립과 자주적인 사회운영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외에 이들의 혁명정부를 지지하는 국가와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탈레반 정부를 가장 우선적으로 지지했습니다만, 과연 탈레반이 신정혁명을 강화한다면 과연 그들이 계속 지지할지는 두고 봐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비슷하게 파키스탄 같은 국제적으로 개방된 나라로 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 탈레반은 국제정세와 근대화를 잘 모르고 근본주의를 내세워도 별 문제가 없던 <저항주체>의 신학생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할 <건설주체>입니다. 과거에는 남부의 칸다하르나 헬만드 주에서 재배되는 아편이 한때 세계의 80%를 공급한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재배되어 이것을 그들의 수입원으로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정상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자립적 경제시스템을 만들고 정당하게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해야하며 해외의 지원과 협력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제적인 표준 (Global standard)을 지키고 따르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식량위기가 심각하고 외화수급, 대량 실업 등의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고, 결국 국제사회의 협력이 없이는 곤란합니다. 아마도 몇 년 지난 뒤 우리에게 요청하게 될 텐데 그때 우리가 적극 협력해줘야 할 것입니다.
7. 탈레반정부의 아프가니스탄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발전적 변화를 이루게 될 수 있을까요?
현재 대표적 문제로 세계에 부각된 것은 여성인권문제입니다. 최소한 열린 이슬람국가들과 형식적으로라도 비슷한 위상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후 언론, 집회, 결사 등 보편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점차 하나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성들의 교육을 부활시키고, 각종 직업과 공무에 여성들을 참여시켜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법률보다 이들이 갖고있는 “샤리아”라는 전통적 종교법입니다. 서구세계의 기준으로 변화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저들이 적용하는 샤리아 법을 터어키 정도의 개방적인 이슬람 법으로 해석하도록 협력하고 그것을 통해 내부적으로 개혁적인 동력과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뒤 변화를 지원하는 국제적인 협력이 이후에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들을 약탈적인 자본주의에 포섭시키는 발전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경제와 문화를 토대로 하되 국제사회의 합의를 얻어낼 수 있는 정상국가가 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지요.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국가입니다. 하나의 국가를 만들려다 보니 참혹한 내전이 발생했는데, 가능한 파슈툰, 타직, 하자라 등 종족들이 평화롭게 협력하는 연방국가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후 평화적인 국가가 되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8. 지난 8월에 국내에 오신 아프간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탈레반 정부는 외국NGO 활동가들을 보복하지 않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정책도 신뢰하기 어렵지만, 중앙통제 시스템이 미치지 않는 먼 지방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보복이나 폭력은 중앙정부가 제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6.25 당시처럼 완장차고 나와 탈레반에게 충성경쟁을 하기 위해 마을을 다니면서 겁박하고 사적인 테러를 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 그로 인해 제가 알고 있는 스탭의 가족들이 지목을 받아 위협을 받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대 젊은이들은 탈레반 군대로 강제징집 당하고 거부하면 고문을 받거나 가족이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국정부나 NGO도 미국의 요청으로 온 미국편이라고 생각해서 생명에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불을 보듯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희 한국NGO들이 이들 아프간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106개의 시민단체들이 연명하여 20일 외교부 앞에서 발표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 정부가 미라클작전이라는 비상한 방법으로 8월 26일, 390여 명의 아프간인들을 ‘특별기여자’로 재빨리 한국에 데려왔습니다. 정말 잘한 일입니다. 이분들은 대부분 철수 직전에 한국대사관과 코이카병원에서 한국을 도와 근무하며 일한 사람들입니다. 탈레반 혁명정부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지요. 미국의 경우도 자국을 도왔던 아프간인들을 약 2만 명 넘게 미국으로 수송하겠다고 했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 나라가 생명의 위협이 분명한 사람들은 자국으로 대피를 시켰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문명국가로서는 당연한 일이지요.
9. 한국은 아직도 난민문제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실제 앞으로 우리는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또 향후 아프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어떻게 시민사회가 협력할 수 있을까요?
일단 우리는 그들이 편안하게 정착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전 세계가 이들을 자국으로 데려오는 상황이라 우리나라도 그다지 큰 논란은 없었습니다만, 난민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제 순혈주의에 의거한 배타적 단일민족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입니다. 세계적인 문제에 10번째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지요. 앞으로 발생할 환경, 전쟁 등으로 인한 난민문제는 이제 미국이나 유럽국가에 맡길 수만은 없고 우리도 책임주체입니다.
우리나라도 현재 750만의 재외동포들이 해외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조선말부터 일제 때 이후 역사 속에서 혹독하고 엄혹했던 시절, 자의든 타의든 고향을 떠나 난민으로 떠돌던 사람들의 후예이며, 이들을 수용해준 나라 덕분에 그들이 살 수 있었듯이, 우리도 이제 난민들을 품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잘사는 나라로서 그러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현재는 혼돈기여서 어렵겠지만 몇 년 뒤에 아프간이 세계사회에 도움을 청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도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번역, 편집 / 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