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인권상황과 대통령 선거 정국
ICHRP 의장 피터 멀피 선생 인터뷰
지난 9월 15일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을 반인륜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정식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마약과의 전쟁, 초법적 살인 등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범죄행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통령으로 출마한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ICHRP 의장인 피터 멀피 선생에게 필리핀의 인권상황과 내년 5월 대통령 선거 정국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았습니다.
1. 바쁘신 가운데서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필리핀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해 오셨고 지금은 필리핀 국제인권연대 (International Coalition for Human Rights in the Philippines, ICHRP) 의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간단한 선생님 소개와 함께 ICHRP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름은 피터 머피입니다. 저는 호주 시드니에 사는 언론인 겸 노동조합원이자 활동가입니다. 저는 1981년 호주 벌크선을 타고 필리핀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 후 저는 1989년, 클라크와 수빅 미군기지 아시아 태평양 평화개발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필리핀 KMU(May Frist Labor Movement) 노동센터를 접하게 되었고, 호주로 돌아오면서 필리핀 호주연합 링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노동조합 연락업무를 해오고 있었고, 이 일을 통해서 2013년 퀘손시티에서 필리핀 국제인권연대를 설립하는 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ICHRP의 목적은 필리핀의 인권상황에 대응하는 것이고 회원은 국제단체들입니다. 노동조합과 변호사 단체, 특별히 교회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두테르테 집권 이후 소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ICC에서도 조사를 시작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필리핀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정권 때 민다나오 원주민 공동체 지도자들에 대한 초법적 살인이 증가했는데, 이것이 2013년 ICHRP의 설립을 자극했다는 것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6년 하반기 짧은 기간 동안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러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듯 보였지만, 동시에 그는 메트로 마닐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결국 그는 인권을 경멸하고 대량학살을 조장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2017년 말까지, 빈곤층과의 전쟁의 희생자 가족들은 “Rise Up for Rights and Life”라는 운동을 통해 조직되었고, 그들은 가족들과 친지들에 대한 초법적 살인에 대해 법적 대응을 계속하다가, 결국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사건을 제소했습니다. ICC에 최소 두 그룹의 고발이 접수되었고 방대한 증거가 제출되었는데, 주로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용의자를 살해하라는 공개적인 선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언론에서 이런 살인 현장을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사건의 수는 만 건을 훨씬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3월 ICC는 자체 조사관들을 증거수집 작업에 투입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이 자료들에 대한 예비조사를 시작했고, 두테르테는 즉시 필리핀이 ICC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필리핀은 2019년 3월 19일, ICC 협약 비준함) 마약과의 전쟁을 가장한 가난한 사람들과의 전쟁은 계속되었고, 마닐라 외곽 도시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추정된 사망자 수는 3만 명이 넘었으며 2020년 3월 시작된 COVID-19 대유행의 봉쇄 기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필리핀의 좌파정치 운동가들에 대한 초법적 살해 역시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국민민주전선과의 평화협상을 추진하면서 집권 9개월 동안 잠시 중단되었고 지방에서는 휴전이 성사되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5월 마라위 시에서 이슬람 국가 지도자라고 자칭하는 이실론 하필론을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격렬한 싸움이 촉발되었습니다. 두테르테는 민다나오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협상을 통한 분쟁완화에 반대하면서 포격과 공중폭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마라위 도시의 마라나오 사람들의 인권을 크게 침해하는 일이었고,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고 4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오늘까지도 이재민 수가 120,000명이 넘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7년 말까지 필리핀민주전선(NDFP)과의 평화협상을 종료하고 공산당과 신인민군을 테러리스트로 선포한 뒤 비무장 민간인을 포함하여 체포면책특권과 안전보장을 받은 NDFP 평화자문위원들을 체포해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그로스 섬은 2017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일련의 보안 작전으로 40명 이상이 처형되고 수백 명이 체포되는 등 민간인 좌파에 대한 치명적인 탄압을 위한 실험실이 되었습니다. 그 후 2018년 말부터 지방 공산당 무력충돌 종식을 위한 전국대책본부(NTF-ELCAC)의 창설과 함께 조직적인 살해가 전국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대책본부는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에 진압작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할 수 있는 군과 경찰 장성들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30일 파네이의 투만독 원주민 지도자들에 대한 살해가 제도적으로 적용되었고 결국 9명이 처형되었고 17명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땅을 훼손하는 한국의 초대형 댐 프로젝트에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2021년 3월 7일, 마닐라 남쪽 산업 단지에서 같은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때 역시 지도자 9명이 처형되고 다른 6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카라파탄 인권연대에 따르면, 두테르테가 2021년 3월 31일까지 집권한 이후, 민간인 좌파 정치 활동가들에 대한 초법적 살인은 394건이었고, 이들 중 313명은 농민이고, 60명은 노동자, 교사, 공무원, 14명은 미성년자, 57명은 여성이었습니다.
3. 두테르테 정권이 출발할 당시 국민 대다수의 지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정권 초기 그가 약속했던 일들은 그동안 필리핀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두테르테는 급격한 보수화의 길을 걷고 폭력적 통치로 돌아섰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나고 보니 두테르테 대통령은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2016년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큰 약속만 했습니다. 당시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 정부는 정말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필리핀 유권자의 대다수는 두테르테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는 농민들에 대한 토지분배 약속과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보장 그리고 계약노동의 중단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평화회담 약속도 파기하고 전면전을 시작했습니다.
두테르테의 다바오 시장 재직 시절,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살인기동대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닐라 만을 마약 판매상들의 시체로 채우겠다는 그의 선거약속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성격상 두테르테는 무자비한 살인자이자 여성 혐오자입니다. 그는 거리의 깡패처럼 말할 뿐만 아니라, 행동 역시도 깡패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두테르테 정부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두테르테의 초기 경제계획은 수백만 명의 도시 빈곤층을 대체할 도시 개발프로젝트에 대한 투기적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세금을 늘리고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는 형편없는 신자유주의 공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정부는 엘리트 가족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줄 프로젝트를 위해 큰 돈을 빌렸습니다. 아울러 두테르테는 그의 전임자의 정책을 유지하고 확장했습니다. 그의 끔찍한 길거리 폭력배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실 그의 아버지가 마르코스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통적인 정치인입니다.
마라위 공성전 이후 두테르테 정부는 군과 경찰, 그리고 대통령 자신의 재량 하에 있는 자금의 지출을 크게 늘렸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경찰청장의 비자를 놓고 미국 정부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두테르테는 마라위 포위공격 이후 미국 및 군과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전염병 폐쇄 기간 동안, 정부는 상당한 수의 피해자들에게 3개월 동안 현금지원을 제공했지만, 그 후 폐쇄가 16개월 더 연장되는 동안에는 현금지원을 중단했습니다. 대유행 기간 동안 두테르테는 사회복지를 대폭 삭감했으며, 전반적으로 두테르테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조정에 있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냈습니다.
4. 내년에 필리핀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6년 단임제인 현재의 필리핀 헌법으로는 두테르테는 다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데도 두테르테가 부통령으로 출마하고 그의 딸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오랜 민중운동의 전통을 가진 필리핀에서 이게 가능한 것인지요?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테르테는 자신의 PDP-라반당을 대표해 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그의 딸 사라가 대통령 후보가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왕정정치가 필리핀에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헌법상 부모가 합법적인 후보자가 되지 못할 경우 그의 딸이나 아들이 후보가 되는 것은 거의 정상적인 일입니다. 부통령은 죽거나 사임하는 대통령을 대신하기 때문에, 두테르테의 움직임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6년 단임 위반)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명되면 법정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매우 순응해 온 대법원의 독립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두테르테는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떤 기소로부터도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하기를 원합니다. 두테르테의 필리핀에서는 법치가 전적으로 선택 사항이며, 이것은 대통령 자신이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통치원칙을 경멸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5. 필리핀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국제 연대활동이 있어 왔습니다. 보다 효과적인 국제연대 활동을 위한 과제가 있다면요? 한국의 시민사회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요?
한국 정부는 필리핀에 군사장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해외 공식원조로는 대우건설이 수주한 파나이 잘라우르 메가 댐 프로젝트 등 파괴적인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양국 관계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 인지하면서 필리핀의 인권상황이 바로잡힐 때까지 이러한 프로그램을 중단하거나 취소하도록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에는 많은 필리핀 해외 계약직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와 노동조합 단체들은 한국에서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아울러 필리핀 NTF-ELCAC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단체들은 ICHRP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기본적인 집단적, 개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적인 연대의 수준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 인터뷰/ 정진우
- 번역 및 편집/ 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