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패전 75주년 한일 공동선언문
1945년부터 75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 7월 2일, 세계를 덮친 코로나 19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시민사회와 종교인들은 한일간의 화해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 (이하, 한일플랫폼)을 발족했다.
75년 전 8월 15일,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조선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며 오늘에 이르렀고, 그 결과 지난해부터 한일관계가 전후 최악의 교착상태에 봉착하였다. 한일 시민사회와 종교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이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이제야말로 이 왜곡된 역사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물음으로써 한일 화해와 평화를 향한 연대의 틀을 구축하자는 공감대로 한일플랫폼을 시작하였다.
지난 75년간 일본과 한반도를 속박해온 부조리는 무엇이었나? 1875년 일본 군함의 강화도 군사도발 이후 대한제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일제의 압박 아래, 러일전쟁 중의 제1차 한일협약, 러일전쟁 직후의 제2차 협약으로 일본제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1910년 8월, 강제 합병된 한반도 백성들은 36년에 걸친 혹독한 식민지 지배로 인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 그리고 국가 신도에 기반한 황민화 정책으로 인한 문화 파괴의 고난을 겪었다. 이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일제의 중국 침략 병참기지가 되어, 많은 이들이 강제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과 성적 착취를 강요당했다.
1945년 일본의 15년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시아는 미소냉전체제의 질곡 속에 놓이게 되었고, 식민지 지배를 받은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했다. 한편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책임 규명이 불문에 부쳐진 채,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미일안보체제)을 통해 미국의 극동 군사전략을 보완하는 종속국가체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통해 패전의 폐허를 딛고 경제부흥의 계기를 얻었다. 1953년 정전협정 후 일본은 줄곧 한국과만 회담을 진행했고, 결국 경제적 우위를 이용하여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일본은 청구권 협정에서 한일합병이 부당한 군사·정치적 압력 하에 강요된 점령이었다는 역사적 사죄와 책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경제협력이라는 미명 하에 한국정부로 하여금 청구권 포기에 동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불문에 부치게 되었다.
(1) 한일의 역사 문제
우리는 일본의 조선식민지 지배의 기점이 된 1905년 을사늑약 (제2차 한일협약)의 “표제”에 한국 측(황제)의 비준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국가(대한제국)를 대표하는 개인(황제)에게 강제 혹은 강압적으로 체결한 조약은 국제관례법상 무효라는 점을 강조한 1963년 UN보고서를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인식에 입각하여 군사력의 위압으로 식민지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이 한반도와 아시아의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금까지도 회피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다음을 요구한다.
➀ 1939년부터 1945년에 걸쳐 일본은 식민지 치하의 한반도에서 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 “모집”, “관알선”, “징용”의 형태가 있었지만, 어떤 방식이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연행되어 비인간적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판결 (2018년 10월)은 강제연행·강제노동을 자행한 일본기업에 대한 정당한 판결이므로 우리는, 이와 관련된 일본기업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 피해자들에게 아직 이행하지 않은 배상을 실행할 것과 일본정부가 이 기업들의 책임 이행을 방해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➁ 일본정부는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세계유산등재에 있어서, 군함도(하시마)를 비롯해 일본 각지의 “세계유산”에서 조선인들이 “자의에 반해서 연행되었다.” “참혹한 상태에서 노동을 강제하였다.”라는 사실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역사 전체”에 대해 설명할 것을 일본에 요구했으며 “관련자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도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도쿄에 개설했던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회, 군함도탄광의 전시에서 전쟁 시의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내용을 시사하였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강제노동의 사실을 인정하고, 현장 피해자의 증언, 기록 등을 수집하여 “전체의 역사”를 전시할 것을 촉구한다.
➂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군이 입안, 관리했던 성노예제로 여성들이 받았던 성폭력 피해의 실태를 일본정부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인정 위에서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혹은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죄하고 배상하여 또다시 똑같은 인권침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더욱더 진상규명과 역사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아울러 일본군‘위안부’제도의 사실을 부정하는 언행은 피해자의 명예에 다시금 상처를 주는 인권침해라는 것을 인식하여 그 효과적 방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동시에 일본 정부는 기억의 계승을 위한 노력을 절대로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2015년 12.28 “한일합의”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➃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을 학살하는 대참사에 대해, 지금까지 연구기관이나 시민단체들은 구 일본 해군의 “해군 무선전신 후나바시 송신소”에서 발신한 “조선인 폭동”이 루머였고 군대·경찰·자경단이 집단 살해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 대학살은 한반도의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독립운동과 의병 투쟁을 탄압하던 흐름 속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매년 9월 1일,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지만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역대 도지사가 대독해 온 추도문 자체를 취소했다. 게다가 극우 단체의 추도식 방해를 계속 방치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여 학살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죄할 것과 도쿄도가 97년 전의 역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추모할 것을 촉구한다.
➄ 우리는 일본 정부와 국회가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 일본군 위안부, 징용·군인·군속 등 아시아 태평양 전쟁 치하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성적 착취의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
(2)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과 일본 평화헌법
➀ 우리는 한반도의 민족분단이 애초에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을 확신하면서 민족분단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종교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지지한다.
➁ “미국과 함께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를 지향하며 일본국 헌법 제9조를 비롯하여 헌법개악의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신조 수상은 “2021년 9월까지의 본인 임기 중에 개헌을 할 것이다.” 라는 발언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여론은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있고 내각 지지율도 과반수에 미치지 않고 있다. 또 지난 8월 4일, 고노 방위상이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새로운 미사일방위, 즉 “적기지공격능력”문제에 대하여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이해나 양해를 구할 필요 없다고 분명히 발언한 것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우리는 강력히 항의한다. 한일플랫폼은 국내외의 목소리를 결집하여 서명운동, 국제캠페인과 로비 활동 등 9조 헌법개정 반대투쟁을 계속할 것이며, 9조 수호가 한일 평화의 중심 아젠다가 되게 할 것이다.
➂ 한국 종단과 시민사회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구체적 진전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하며 평화헌법을 지키려고 하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종교인들의 노력을 더욱 격려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에 우리는 한국의 종교시민사회가 주도하고 있는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에 세계 시민사회와 함께 적극 참여할 것이다.
➃ 우리는 일본의 아베 정권이 다양한 핑계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국교회복협상을 중단하며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조장하고 있는 것에 항의한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조일 국교문제가 서로 연동되어있는 과제임을 인식하면서, 일본정부는 조일협상을 즉시 재개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일본이 1965년 한일조약체결 당시의 잘못 (역사책임을 회피하고 경제협력방식을 취함)을 반복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3) 동아시아의 비핵지대화와 군축,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에 관한 공동의 비전
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폭자 전체의 10%를 차지한다고 알려진 조선인 피폭의 진상규명과 배상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약 2200명의 재한피폭 생존자의 원호는 피폭자와 한일시민 등의 재판투쟁으로 쟁취하였지만, 간호 수단의 지원도 없으며 한일 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약 200명이 있다고 알려진 재북피폭자는 “국교의 벽”으로 막혀서 일본의 원호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고령화된 한국과 조선인 피폭자에 대한 조속한 원호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➁ 일본열도의 남단에 있는 오키나와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과 미야코지마를 포함하는 이도의 군사기지화는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섬들은 전쟁을 도발하는 섬이 되어 가고 있다. 오키나와의 미군군사기지는 새로운 성폭력과 성추행의 온상이 되었고, 게다가 아시아의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한일플랫폼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일본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최대의 폭력인 전쟁에 저항하기 위해서 비폭력 항쟁으로 새로운 기지건설을 저지하고 있는 오키나와 평화의 투쟁에 연대를 표한다.
➂ 동아시아의 비핵화지대와 군축을 위해서는 “한반도 종전”과 “한반도 통일”이 가장 큰 우선 과제이다.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위하여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고 남북한,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가입할 것을 촉구한다.
(4) 한일 차세대 평화교육·인권교육 추진
➀ 현재, 연예와 문화면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역사인식에는 큰 괴리가 있다. 일본의 학교교육, 사회교육은 식민지지배에 관한 역사교육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괴리를 채우기 위해서 학생, 청년, 시민이 현지연수와 문화교류를 통해서 만나 함께 공부하며 미래를 공유함으로써 연대의식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한일 양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동시에 한일플랫폼 역시 이제까지의 한일교류사업을 더욱 심화해 추진할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제정치라는 주변국의 정치적, 외교적 기술과 힘이 아닌 “화해와 평화를 원하는 민중의 목소리”이다. 민중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 우리는 한일 양쪽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 특히 빈곤, 차별, 박해의 과제를 함께 짊어지고 해결하기 위해 연대할 것이다.
➁ 우리는 한일역사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탐구하며 공유하기 위해서, 연구자들과 연계해 “한일역사시민포럼”을 상호간에 개최하여 시민사회의 역사인식에 대한 건설적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➂ 우리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기존의 “국민교육”을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며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 어울리는 “평화교육, 인권교육, 다문화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➃ 일본정부는 북한과의 외교문제와 연계해 “고교 무상화제도”(2010년 4월),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2019년 10월), “학생지원긴급해택금 제도”(2020년 5월)에서 조선학교(유치원, 고등학교, 대학교)를 배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이 명백한 차별이며 일본의 역사책임, 자녀교육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점을 밝혀 둔다. 우리는 일본정부가 이러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과 재일한국•조선인을 비롯하여 민족적 소수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적개심과 차별, 그리고 어떠한 폭력과 전쟁에도 반대하며, 폭살의 역사 속에서 부조리한 고난을 강제 받았던 사람들과 함께하며 한일의 진실한 화해와 평화를 지향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는 사회의 시민으로서 또한 종교인으로서 전후 75년째의 8월 15일에 이상의 인식을 공유하며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연대할 것이다.
2020년 8월 12일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
【공동대표】
이홍정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정인성 교무(남북하나재단 이사장)
한충목 상임대표(한국진보연대)
권태선 공동대표(환경운동연합)
오노 분코(군마제종교자모임)
타카다 켄(전쟁반대•9조수호 총동원행동)
노히라 신사쿠(피스 보트)
미쯔노부 이치로(일본천주교 정의와평화협의회)
【운영위원】
강주석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신승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장)
정상덕 교무(원불교 중앙총부 영산사무소장)
김병규 통일위원장(한국진보연대)
손미희 공동대표(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안지중 집행위원장(한국진보연대)
엄미경 부위원장(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구중서 운영위원장(기지평화네트워크)
김경민 사무총장(한국YMCA전국연맹)
윤정숙 공동대표(녹색연합)
이신철 상임공동운영위원장(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이나영 이사장(정의기억연대)
이태호 운영위원장(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와타나베 캔주(일한 민중연대 전국 네트워크)
이즈카 타쿠야(일본NCC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위원회)
기타무라 케이코(일본NCC 여성위원회)
와타나베 미나(여자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 WAM)
이시카와 유키치(아이치 종교자 평화의 모임)
오다가와 코(재한피폭자문제시민회의)
김성제(일본NCC 총간사)
시라이시 타카시(일한시민교류추진희망연대)
타이라 아이카(평화를실현하는그리스도인네트)
타케다 타카오(평화를 만들어내는 종교자네트)
나카이 준(일본천주교 정의와 평화 협의회)
히키 아쯔코(일본NCC교육부)
히다 유이치(고베 청년학생 센터)
【실행위원】
김영환 대외협력실장(민족문제연구소)
문성근 사무총장(흥사단)
윤혜란 국장(한국YMCA전국연맹)
황보현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장)
이즈카 타쿠야(일본NCC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위원회)
구주 노리코(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 네트워크)
타케다 타카오(평화를 만들어내는 종교자네트)
하루마 노리코(일본 천주교 정의와 평화 협의회)
후지모리 요시미쯔(일본NCC 총무)
와타나베 타카코(평화를실현하는그리스도인네트)
사토 노부유키(외국인주민기본법의 제정을 구하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
시오에 아키코(조선반도와 연대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