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아베정권의 위기는 일본의 위기인가?

이기호 (한신대학교 교수)

아베정부는 집권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일관계는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고, 수그러들던 COVID-19는 다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은 1년 연기되었지만 개최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사학비리에 연루되고 이를 부정한 아베의 거짓이 드러났음에도 끄덕 없이 일본 최장수 총리로 등극한 아베정권의 위기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아베정권의 위기를 일본의 위기와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인가?

아베총리의 일관된 정책은 2012년 선거구호였던 ‘일본을 되찾아오자(日本を取り戻す)’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아베총리가 되찾고자 한 “일본”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일본이 오벌랩되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얼핏 보면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거품경제의 몰락으로 시작된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 경제대국 일본의 면모를 되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국운을 걸고자 했던 이유는 1964년 도쿄올림픽이 패전으로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고 국격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했던 각인된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고 폐허가 된 일본은 불과 20년이 채 안되어 1964년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세계의 손님들을 맞이하였던 하네다공항에서 바다위를 달리며 도쿄시내의 건물 사이를 공중부양하듯 가로질렀던 모노레일과 서양에도 없던 시속 200킬로로 질주하는 초고속열차 신간센은 오히려 서양의 문명을 압도했다. 게다가 군대가 없는 평화국가의 이미지에 일본 특유의 친절함으로 무장하였을 터이니 서양인들이 이후 저팬 넘버원(Japan No.1)으로 감탄의 박수를 보낸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군사력을 과시하며 미국과 맞장을 뜨고자 했던 중국의 부상과 달리, 5~60년전 일본의 부상은 미국에 순응하며 비핵3원칙을 제시하고 전쟁을 포기한 채 기술력과 경제력으로 세계를 감탄시키며 조심스럽지만 신속했다.

그런데 아베정권이 되찾고자 한 일본은 전후의 일본만이 아닌 듯하다.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전후체제의 탈각’을 이루어내고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자국의 군대를 가질 수 있는 ‘보통국가’가 그가 되찾고자 하는 ‘일본’이다. 곧 ‘패전국’의 흔적을 지워내고 ‘패권국’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은 단지 일본 헌법만을 변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후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베총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전후체제와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2006)’의 실상은 패전국 일본의 전후질서에서 패권국 일본이라는 위상변화를 포함하는 거대한 국제질서의 변화를 내포한다. 일본의 맥락에서 ‘전후체제’란 패전국 일본에게 책임을 묻고 연합국과 평화조약을 맺은 1951년 9월 8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은 날 미국과 일본이 양자간 체결한 미일방위조약을 양축으로 하는 샌프란시스코체제이다. 이 체제의 특징은 1947년의 일본 헌법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전쟁과 무력을 영구히 포기하며 이를 위해 육해공군 및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는 헌법9조를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미일안보조약을 통해 오키나와를 사실상 점령하고 일본을 미국의 군사적 속국으로 만들었다. 특히 한국전쟁 중 형성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한국전쟁을 시발로 미국이 베트남전쟁, 중동,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등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주의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2015년 일본총리 최초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던 아베총리는 일본의 두 얼굴을 아래와 같이 융합시킨 바 있다.  “…이제 우리들이 들어 올리는 깃발은 ‘국제 협조주의에 바탕한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깃발입니다. …(중략)… 미국 국민을 대표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동맹을 ‘희망의 동맹’이라고 부릅시다. 미국과 일본, 힘을 합해 세계를 한층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전후 70주년을 맞이했던 2015년 4월 29일의 이 연설은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승전국과 패전국이라는 과거로부터의 관계가 아니라 ‘국제 협조주의에 바탕한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가치 동맹이자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동맹관계라고 규정한 것이다. 즉 여기에는 아픈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기 보다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미국과 일본의 대등한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 적극적인 평화주의의 실현방식이 전쟁을 포기하는 평화국가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일군사 동맹을 견고하게 함으로써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해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베총리는 전후 70주년을 맞이한 2015년에 전후체제 탈각의 프레임을 공표하고 2020년이전에 개헌을 통해 자위대라는 이름의 보통군대를 보유한 국가로 거듭남으로써 잃어버린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고 이를 기념하는 축제로서 도쿄올림픽을 본인의 임기중에 실현하는 정치일정을 강행하고자 했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여 2006년에 이어 두번째로 임기를 시작한 아베총리는 2013년 정부가 임의로 특정사안을 비밀로 지정할 수 있는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하여 정부에게 불리한 내용을 지정해 공개하지 않을 수 있게 하였다. 2014년 7월에는 정부의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곧 헌법 9조의 일체의 무력사용을 포기함으로써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해석을 변경하여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을 당했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신 반격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전쟁참여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후 2015년 4월말 미국에서 ‘희망의 동맹’이란 주제로 의회연설을 한 계기로, 같은 해 6월과 9월에 걸쳐 이를 실질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안보관련 법안 11개 조항을 통과시켰다. 그 해 8월말 안보법제 폐지와 아베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12만명이 1960년대 안보투쟁에 버금갈 만큼 국회의사당을 둘러싸고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이다. 이후 2017년에는 도쿄올림픽 등을 이유로 공모죄 법(테러 등 준비죄)을 통과시켰다. 범죄가 이루어져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일본의 형사법 체계를 바꾼 것이다.

아베정권이 추구하는 두 얼굴의 일본은 숨길 수 없이 명확하다. 전후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인구 1억이 모두 중산층이었던 경제대국 일본의 얼굴과 군사대국으로 성장해 미국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전쟁 가능한 국가인 일본의 얼굴이 함께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군사비 지출은 중국($2610억), 인도($711억)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일본($476억)이 3위 한국($439억)이 4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순위에서도 일본이 9위, 한국이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 질서가 요동 치고 있다. 2013년에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은 미국과 더불어 G2 시대를 선언했고 미국에 의한 동북아질서는 일대일로를 상징으로하는 중국 중심의 새로운 구상에 의해 도전 받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험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핵보유국가로 자리하게 되었다. 무역갈등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과 중국은 기술, 군사, 외교를 포함하는 새로운 질서를 놓고 겨루는 패권경쟁을 한창 진행중이다.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최대교역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차원에서는 미국과 동맹의 입지를 분명히 하면서 인도-태평양구상을 별도로 전개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2015년말에 한일간에 맺은 협정은 한국사회에서는 커다란 반발을 불러와 2016년 박근혜정부의 탄핵에도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정부하에서는 이 협정에 기초하여 일본이 출연한 위안부피해자 지원재단(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켰고 한국의 대법원은 2018년 10월,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에게 강제징용 피해자가 낸 손해배상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은 이에 반발하여 2019년 7월1일 일본이 경제제재를 단행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영토 및 역사갈등에서 무역갈등으로 확대되었다. 아울러 한국은 한일 양국이 맺은 유일한 군사협정인 지소미아(GSOMIA)를 조건부로 연장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미일 동맹체계에도 엇박자가 벌어졌다.  

여기에 의외의 변수로 등장한 것이 COVID―19이다. 코로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올해 11월 대선가도에 중대한 변수로 등장했다. 이미 도쿄올림픽은 연기되었고 동북아의 국가간 자유로운 이동은 사실상 금지되었다. 백신개발에 열중하고 국가간 협력을 통한 방역체계를 완성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코로나사태는 전쟁을 불사하는 국가간 갈등관계를 진정시키고 협력을 위한 새로운 국면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 ‘국가’를 주어로 하는 패권국을 꿈꾸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이 아니라 ‘시민’을 주어로 하는 동북아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COVID-19가 우리에게 던진 가장 긴급한 요구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