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슈 선생과의 인터뷰 – 대만 1: 대만 독립, 가장 절박한 도전
* 빅터 슈 선생은 대만 출생으로 오랫동안 세계교회협의회(WCC), 미국그리스도교교회협의회(NCCCUSA) 등과 함께 일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장 서 왔으며, 최근에는 대만장로교회(PCT) 부총무,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엮임 하였습니다.
1. 대만 사회가 직면한 가장 결정적인 도전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회, 역사적 배경과 대만의 독립을 향한 중국의 공격적인 태도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2020년 1월 대만 국민은 민주진보당(DPP)과 차이잉원 총통의 권한을 4년 더 연장하는 데 압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대만 선거 역사상 이번 선거처럼 현직 후보가 다른 어떤 후보보다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 투표에서의 쟁점은 한 마디로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이 ‘일국양제’ 조약을 섣불리 종식시켜 홍콩 민주화 투쟁을 탄압한 것이 대만 국민들을 놀라게 했고, 대만 국민들은 자신의 미래가 중국과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DPP는 대만을 항상 독립국가로 간주해 왔으며, 야당인 KMT(장개석 국민당)는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해 사실상의 정치적 독립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주로 미국의 군사 보호 덕분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주권 영토의 일부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어떠한 제안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내전(1920년대부터 1949년까지)에서 패전한 KMT는 오랫동안 중국을 재탈환한다는 망상을 유지해 왔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대만이 ‘한 국가’ 아래 중국에 속하면서 효과적인 독립을 유지하며 일종의 홍콩 플러스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럴 듯 해 보였습니다. 오늘날, 그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대만 국민들은 최근 대규모 시위에서 홍콩인들이 요구하는 5가지 요구에 대해 5개의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선거 후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2016년 DPP가 KMT를 해체한 이후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계속 냉각되어 왔습니다.
대만 역사가 대만의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규정합니다. 대만 현 인구의 90% 이상이 1949년 중국 내전 후에 태어났으며, 대만과 중국이 나뉘어 졌을 때 성인은 지금 인구의 2%도 채 되지 않습니다. 1895년에서 1945년 사이의 대만 성인들 대부분도 이 섬이 도쿄에서 통치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본인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대만은 지난 125년 중 5년 동안만 본토로부터 통치되어 왔으며,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KMT 당국은 수만 명의 대만 민간인을 살해하고 구금하였습니다. 대만의 법적 지위가 어떻든 간에 대만과 중국의 연계성은 매우 빈약합니다.
2019년 6월, 한 여론조사에서 대만 국민의 56.9%가 자신들을 대만인으로만 여기고 있으며, 36.5%는 대만인이면서 중국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3.6퍼센트만이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COVID-19 사태 당시, 한 대만 여론재단의 조사결과에는 대만인의 정체성이 83.2%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고, 대만인이면서 중국인은 5.3%, 6.7%가 중국인이면서 대만인, 그리고 4.8%는 의견이 없거나 답변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만은 주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데 논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독일이, 미국이 영국이 아닌 것처럼 대만은 중국이 아닙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대만은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그 역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의 대만에서는 점차 더 작은 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해협 건너편 푸젠성의 단순한 한 부분, 즉 작은 동생으로 볼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대만은 이제 어른이 되어서 이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대만해협 양쪽에서 사실상의 독립 70년 만에 ‘하나의 중국’ 신화가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대만은 절대 중국의 지방이 되기 위해 투표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은 대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이 섬을 점령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한다고 거듭 위협해 왔습니다. 이러한 적개심과 위협으로 2400만 국민의 나라를 영속적인 궁지에 몰아넣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대만을 국제 사회의 소중한 일원으로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2. 조 바이든씨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그의 대만 정책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와 기대는 어떠한가요?
미국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가 거의 없는 “양당제”라는 점입니다. 전략상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정책목표는 대동소이합니다. 둘째, 자국 이익 우선주의의 원칙에 따라 파트너 국가의 이해가 관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의 동아시아 국가들을 미국의 호수인 태평양을 보호하는 최전선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국가들을 통해 자신들의 안보, 군사, 경제적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제 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의 대만 정책의 핵심입니다. 이 국가들은 처음에는 조지 케넌 장군이 지지한 봉쇄 정책의 일부였고, 그 후에는 미국의 경제 파트너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대 대만 정책의 특이한 점은 미 의회의 법률이 이를 규정하면서, 양당 (민주, 공화당)이 이를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1) 대만 관계법
이 법은 1979년 1월 1일 미국과 대만에 대한 관계가 파탄된 후 의회에 의해 통과되었으며 이후 계속 발효되고 있습니다. 공식적 정부대표 없이 공식적 외교관계 없이 비공식적인 관계를 통해 상업적, 문화적, 기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대만의 법적 지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대만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미국의 입장은 대만 관계법의 근간입니다.
2) 여섯 가지 보장
미국-대만 관계의 6대 외교정책의 기조입니다. 1982년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3차 공동선언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해명으로 통과되었습니다. 대만과 미국 의회 모두에게 미국이 앞서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단절했더라도 대만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오늘날, 6대 보장은 미국과 대만의 관계를 수행하는데 사용되는 준공식적 (semiformal) 지침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지침은 미국 역대 행정부들에 의해 대체로 재확인되었습니다. 2016년 이전에는 순수하게 비공식적이었지만 2016년에는 구속력이 없는 결의로 미 하원에 의해 정식 내용이 채택되어 공식적인 지위로 격상되었으나 직접 집행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①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의 종료 날짜를 정하지 않는다;
② 미국은 대만 관계법의 조항을 변경하지 않는다;
③ 미국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중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않는다;
④ 미국은 대만과 중국을 중재하지 않는다;
⑤미국은 대만의 주권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즉, 그 질문은 중국 스스로 평화적으로 결정할 문제였고, 대만이 중국과의 협상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⑥미국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3) 대만 연합국에 대한 국제적 보호 및 강화 이니셔티브(TAIPEI)
2020년 3월 4일, 하원은 만장일치로 타이페이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상원은 2019년 10월 말에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하원은 실제로 이 상원의 법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번 법안은 미 행정부에 대만의 국방·안보 지원 및 대만 국제지위 지원강화를 촉구하는 시리즈 중 세 번째 입법입니다. 2018년 2월 의회는, 2018년 3월 법으로 제정된 대만여행법(PL 115-135)을 통과시켰고, 2018년 12월에는 무기판매 및 방위역량에 관한 약속이 담긴 아시아 안심 이니셔티브(ARIA)를 통과시켜 2018년 12월 31일(PL 115-409) 법으로 제정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내 놓지 않는 대신, 미국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러한 공식적인 정책을 준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3. 한국의 시민사회가 연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요?
1) 대만 국민의 자결권 등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대만 국민들은 자신들의 통치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자의적인 주장을 강요당해서는 안 됩니다.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의해 대표되는 것이 아닌 자기 대표권을 가져야 합니다. 대만 국민이, 중국이 대만의 합법 정부이고 대만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압력으로 인해서 국제적으로 고립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유엔의 194개 회원국 중 15개국만이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대만은 유엔, 세계보건기구, 세계기상기구, 인터폴, 국제민간항공기구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2) 대만인들이 올림픽 경기에서 대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대만 선수들은 “중국 타이페이”로 참가하도록 강요당하고 있고, 대만의 국기 대신에 특별한 상징을 새긴 셔츠를 입어야 합니다.
3) 대만인들이 유엔을 관광객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16년 이후, 중국의 압력때문에 대만인들에게 유엔 회원국이 여권을 발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엔 경비대가 대만인들의 유엔 건물 출입을 거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4) 대만의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과 대만의 인적 교류를 장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치, 문화, 과학, 학술 및 스포츠 활동 등 모든 분야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4. 대만은 아시아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첫 번째 나라입니다. 대만 종교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경우 건설적인 대화를 저해하는 세력은 주로 개신교권인데, 조언의 말씀은?
동성결혼에 대해 대만 교회는 한국 교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대만 정부는 동성결혼에 있어서 두 파트너에게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지만, 교회는 이 입법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대만장로교회(PCT)는 2014년부터 신도들을 참여시켜 신학, 사회학, 과학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듭해 왔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시도들은 지역 교회와 총회 차원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가장 최근의 논란은 2020년 10월에 있었습니다. 차이잉원 대통령이 LGBTQ 공동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국가조찬기도회 행사 준비위원회가 이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 대통령 초대를 취소했습니다. 20년 전 이 연례 국가조찬기도회 시작을 주도했던 PCT는 차이잉원 대통령을 초대하지 않으려는 기획위원회의 조치에 반대했습니다. PCT의 이의 제기로 국가조찬기도회가 취소되었습니다.
* 번역/정리 – 신승민